I. 배경

 

현재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위상을 만든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의 부임 이후 근 몇 년 동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흥망성쇠는 그의 철학이 확실이 묻어나는 전술과 함께했다. 4-4-2 포메이션과 두줄 수비라는 컬러는 아틀레티코를 2010년대 중반 유럽 축구계의 신흥 강자로 도약하게 만들어주었지만, 이내 아틀레티코를 옥죄는 틀이 되어 그 이상의 발전을 막았다. 두 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이후, 아틀레티코는 유럽 대권을 노리는 '컨텐더'의 위치를 굳혀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체'와 '쇠퇴'였다. 리그에서는 준우승과 3위를 오갔고, 챔스에서는 16강 또는 8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심지어는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수모마저 경험했다. 19-20 시즌 리버풀과의 16강 매치에서는 그야말로 질식수비와 역습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주며 이변을 연출했으나 냉정히 말하자면 그것이 전부였고 그것이 한계였다. 리버풀전 이후, 유럽을 흔들던 아틀레티코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수렁에 빠진 아틀레티코가 20-21 시즌 라리가 순위표 정상으로 치고 올라간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호성적도 놀라웠지만 그 이면의 변화가 진정 놀라웠다. 틀을 부수고 나와 현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유니크한 전술을 선택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2020-21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라리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비대칭 변형 쓰리백 시스템으로의 변화였다. 비록 후반기에 흐름이 끊기며 처졌지만, 전반기에 쌓아놓은 승점 덕분에 라리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2020-21 시즌 우승을 차지한 디펜딩 챔피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출처: 유로스포츠)

 

그러나 이런 현상은 다르게 말하면 전반기는 매우 놀라운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후반기에는 다시 '정체'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시즌인 현재는 '쇠퇴'를 겪고 있다. 이는 곧 아틀레티코가 새로운 틀에 갇혔음을 의미하며, 그 틀의 성능도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글에서는 아틀레티코의 새로운 틀로 자리 잡은 비대칭 전술이 야기한 문제점, 그중에서도 수비 붕괴에 미친 영향을 집중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II. 아틀레티코의 비대칭 전술

 

먼저 20-21 시즌 아틀레티코의 성공을 불러온 주전 라인업을 보겠다. 비대칭 변형 쓰리백이 눈에 띌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비대칭'에 주목을 해야 한다. 왼쪽과 오른쪽이 무엇이 다를까. 좌우 간 비대칭이 야기하는 이점과 문제점은 무엇일까.

 

2020-21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라인업


일반적으로 쓰리백은 3명의 중앙 수비수와 2명의 측면 수비수를 둔다. 그러나 위의 비대칭 포메이션에서는 수비수가 총 4명 (중앙 3명 측면 1명) 뿐이다. 이는 좌측면의 야닉 카라스코를 토르난테, 즉 수비형 윙어로 배치하여, 공격과 수비 모두에 가담하도록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라스코는 일반적인 쓰리백에서의 좌측 윙백보다 더욱 오버래핑을 한다. 반대쪽 윙백인 트리피어도 수비보다는 공격, 활발한 오버래핑에 강점이 있는 선수인데 카라스코는 이보다 더 올라가서, 공격 시 아예 윙어의 역할을 수행한다.

전술 변화가 20-21 시즌 아틀레티코의 흐름을 단번에 바꿔준 최고의 수가 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야말로 선발 11명의 배치에 구멍이 없었다. 큰 기대를 걸었던 브라질리언 레프트백인 헤낭 로지가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그를 대체할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시메오네 감독은 과감하게 야닉 카라스코와 마리오 에르모소를 기용했다. 카라스코는 측면 공격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화려한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깨부쉈고, 수비 가담도 열심히 했다. 무엇보다도 중원의 토마 르마, 공격의 주앙 펠릭스와의 삼각 연계는 지공 상황에서도 훌륭한 무기가 되었다.

 

왼쪽에서 볼 진행에 대한 카라스코의 중요성 (출처: totalfootballanalysis.com)


에르모소는 레프트백을 소화할 수 있지만 본 포지션은 센터백이었고, 왼발을 이용한 빌드업이 장점인 선수였다. 포백에서 센터백 한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수비에 다소 불안함이 있었고, 레프트백으로 쓰기에는 기동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시즌 시작 전까지만 해도 계륵과 같은 존재였는데, 아틀레티코는 쓰리백으로 그것을 해결했다.

쓰리백에서 양쪽 센터백을 흔히 '스토퍼'라고 표현하는데, 스토퍼 중 한 명을 빌드업에 특화시키고 나머지 두 명의 중앙 수비수들에게 수비 부담을 더 주는 활용법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에르모소도 마찬가지로 왼발 빌드업에 특화된 옵션으로 기용되었다.

 

에르모소가 공격진에게 보내는 롱 패스 (출처: intothecalderon.com)


이렇게 팀의 구멍이 메워지고 상당한 이점만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강점이 있으면 약점도 있기 마련이고 아틀레티코의 변형 쓰리백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약점이 가려졌다가 뒤늦게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당장 위의 문단들만 읽어보아도 문제점 하나가 보인다. 빌드업의 시발점인 에르모소, 전방에서 공격을 주도하는 카라스코-르마-펠릭스의 삼각편대. 모두 좌측에 편향되어있지 않은가? 공격이 단조로워지지 않겠는가?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는 불안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문제점은 매우 훌륭하게 가려졌다. 우측면의 트리피어-요렌테 콤비가 좌측면 삼각편대 못지않은 파괴력을 보여주어 공격 루트의 단순화를 막았다. 트리피어의 강력한 크로스, 요렌테의 침투와 슈팅은 순간적으로 헐거워진 상대의 페널티 박스 오른쪽 공간을 파고들 수 있었다. 이는 잠재적인 문제점을 성공적으로 보완한 좋은 예시이다. 우측면에서 날카로운 크로스를 활용한 공격 지원으로 공격 전개시 단조로움을 막아줄 수 있는 트리피어는 21-22 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팀을 떠났다.

 

트리피어의 히트맵 (출처: shieldsgazette)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 수비의 구멍이다. 카라스코가 아무리 열심히 뛰며 수비에 가담한다 하여도, 결국 그의 본 역할은 공격수다. 아무리 빨리 수비하러 뛰어 내려와도 뒤에 빈 공간이 크게 발생한다. 또한 개인의 수비 능력도 전문 측면 수비수에 비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즉 카라스코를 윙백으로 기용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수비에 불안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완했나? 그리고 지금은 왜 보완에 실패했나?

비대칭 전술을 사용한 첫 시즌, 이러한 구조적인 수비 불안이 있었지만 히메네스와 사비치의 철벽같은 수비력이 수비의 붕괴를 막아줬다. 특히 히메네스가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도 사비치가 버텨주었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즌, 사비치마저 기량 저하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 히메네스는 결장이 더욱 잦아졌고, 펠리페의 경기력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다섯 명의 수비 요원을 선발로 써야 하는데, 팀 내 수비수 중 수비에 강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건 히메네스 단 한 명뿐인데 그마저도 부상과 징계로 인한 결장이 많다. 당연히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선수들의 배치, 구조를 짠다는 것은 전술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일 것이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최적의 틀을 찾고 그 틀을 바탕으로 여러 플랜을 짜면서 선발 명단 열 한명이 이루는 진형을 완벽하게 다듬어가는 것이다. 약점을 최대한 가리고, 강점을 최대한 뽐내야 한다. 한정된 선수단으로 극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것이 전술의 존재 의의, 감독의 임무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아틀레티코의 수비 붕괴는 단순히 선수들 폼의 문제가 아니다. 전술적, 구조적인 문제가 분명하게 존재한다. 수비 진형부터 불완전한데, 이를 보완하기는커녕 오히려 같은 형태만을 고집하며 점점 파훼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수비 진형에는 대체 어떤 문제가 남아있는 걸까. 어떤 해결 방안이 있는 걸까.

사실 비대칭 변형 쓰리백을 사용했던 이전의 강팀들은 수비에 구멍이 뚫릴 수 있는 잠재적인 위기를 성공적으로 예방했다. 어떻게 해냈을까? 의외로 단순하다. 그저 양쪽 사이드의 균형을 맞췄을 뿐이다. 이것은 단순한 선례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법칙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교과서적인 방법이다. 어떻게 양쪽의 균형을 맞추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III. 비대칭 전술로 성공을 거둔 역사적 강팀들

 

III-I. 엘레니오 에레라의 카테나치오

 

현대적인 변형 쓰리백의 원조 중 하나가 바로 그 유명한 카테나치오다. 원래 카테나치오는 중앙 수비수들 뒤에 리베로를 두어 수비 숫자를 늘린 이탈리아식 수비 축구를 아우르는 용어지만, 명장 엘레니오 에레라가 유럽을 제패했던 인테르 감독 시절 사용했던 그만의 독특한 전술을 지칭하기도 한다.

 

카테나치오로 유럽을 제패한 인터 밀란의 라인업


과르네리와 부르니치 뒤에 아르만도 피키를 리베로로 배치하여 수비를 강화했는데, 흥미롭게 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양쪽 측면이다. 좌측면의 지아친토 파케티는 유럽 축구사에서 처음으로 오버래핑을 구사한 측면 수비수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측면 수비수에게 공격 임무까지 부여한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우측면에는 수비수가 없다는 것이다. 브라질 출신의 윙어 자이르가 수비에 많이 가담했지만 어디까지나 수비형 윙으로서의 수비 가담이었다.

아니, 수비 축구에 한쪽 수비수가 없다고? 선뜻 보면 이런 착각을 하게 될 수 있다. 우리는 중앙 수비의 오른편에 위치한 타르치시오 부르니치를 주목해야 한다. 센터백처럼 보이지만 사실 라이트백에 가까운 포지션이다. 부르니치는 뛰어난 피지컬을 기반으로 수비 시 중앙과 측면을 넓게 커버할 수 있었다. 반대편 수비수인 파케티가 활발히 공격에 가담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대적 개념으로 보자면, 수비형 풀백과 스토퍼를 혼합한 듯한 특이한 롤일 것이다. 이 덕분에 우측면에 현대적인 측면 수비수가 존재하지 않아도 자이르와 부르니치로 커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인테르는 수비에 많은 인원을 몰아넣지 않아도 중앙과 측면을 모두 강하게 틀어막을 수 있었고, 수적 우위가 중시되는 축구사의 흐름으로 볼 때 높은 효율을 얻을 수 있었다.

 

III-II. 지오반니 트라파토니의 조나 미스타

 

1980년대 이탈리아를 지배한 유벤투스에게는 지오반니 트라파토니라는 명장이 있었다. 트라파토니는 쓰리백과 포백을 혼합한 『조나 미스타』라는 비대칭 전술을 사용했는데, 이 전술은 각 포지션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비대칭 전술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벤투스를 이탈리아 최강자로 만든 조나 미스타


당대 이탈리아 최고의 리베로였던 가에타노 시레아가 최후방을 책임졌고 브리오와 젠틸레가 그 앞을 지켰다. 안토니오 카브리니는 공수 모두에 능했던 현대적인 완성형 윙백이었다. 이 수비라인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누가 뭐라 해도 우측면의 클라우디오 젠틸레다. 거칠고 숨 막히는 수비를 자랑하는 당대 최고의 도살자 중 한 명이었던 젠틸레는 과거 인터 밀란의 부르니치와 유사하게 중앙과 측면을 모두 커버하는 수비수였으며, 더 나아가 공격 시 앞쪽의 빈 공간으로 전진하는 활동량까지 보여주었다.

젠틸레의 수비력과 활동량은 빈 공간을 채우며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팀 전술과 매우 찰떡이었다. 그래서 왼쪽의 카브리니와 같은 선수가 오른쪽에 없어도 팀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속적인 포지션 이동이 중요했던 조나 미스타 전술에서 젠틸레의 존재는 필수나 다름없었다.

 


IV. 역사에서 배울 교훈

 

20세기를 대표하는 비대칭 전술, 카테나치오와 조나 미스타에서 약점을 보완한 몇 가지 포인트를 알아보았다. 이를 요약하자면, 크게 세 가지이다. 

1. 공격과 수비에 모두 기여하는 수비형 윙어, 일명 토르난테의 존재

2. 중앙과 측면을 모두 커버하는 우수한 수비력을 가진 수비수

3. 위 두 선수를 윙백이 없는 쪽 측면에 배치

현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이 포인트들을 적용해보자.

비대칭 전술로 성공을 거두었던 지난 시즌, 1번과 2번은 갖추었지만 3번이 지켜지지 않았다. 그래서 후반기부터 경기력 저하가 시작되었고, 이번 시즌에는 2번마저 상실하며 수비에 큰 붕괴가 일어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럼 위의 1, 2, 3 요소를 모두 갖추면 적어도 구조적인 수비 구멍은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선수 영입으로 1, 2 요소를 손에 넣고, 전술적인 변화로 3번 요소를 보완해야 한다. 현재 수비형 윙인 카라스코의 뒤를 커버하는 건 수비력에 강점이 있는 수비수가 아닌, 빌드업에 강점이 있는 에르모소이다. 이 부분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같이 쓰기에는 수비적인 부담이 큰 카라스코와 에르모소 (출처: AS)


물론 구조에 조금의 변화를 준다고 해서 당장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 저하와 부상은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이적시장에서 수비수 영입을 할 때, 이 삼박자에 초점을 맞추어 선수를 데려온다면 아틀레티코의 철벽 수비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현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가 저 세 가지 요소에 어떻게 어긋나는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는 다음 칼럼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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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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