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치망순역지 (齒亡唇亦支)

 

치망수역지란 성어가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뜻으로 요긴한 것이 없어지면 다른 것이 그 기능을 대신하게 된다는 뜻이다.

인생은 물론이고 축구에서도 이 성어는 적용된다. 클럽팀은 주축 선수가 이적하면 비슷한 유형의 다른 선수를 영입하거나 비슷한 유형의 선수를 구하지 못하면 팀의 전술을 바꾸며 새롭게 팀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은 그럴 수가 없다. 해당 국적의 선수는 웬만해서는 부를 수 있지만 오직 해당 국적의 선수만 활용할 수 있기에 해당 국적에 필요한 유형의 자원이 없으면 전술을 대폭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

현재 독일 국가대표팀의 상황도 이와 같다. 과거에는 우베 젤러, 게르트 뮐러, 호어스트 흐루베쉬, 루디 푈러, 위르겐 클린스만, 올리버 비어호프, 미로슬라프 클로제라는 훌륭한 정통 스트라이커들이 압도적인 득점력과 강력한 헤딩, 그리고 결정적인 클러치 능력을 보여주며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서독 축구 대표팀인 디 만샤프트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게르트 뮐러와 우베 젤러


하지만 클로제와 고메스가 은퇴한 이후의 독일 국가대표팀에는 정통 스트라이커들이 남지 않았다. 티모 베르너는 빠른 발을 활용한 박스 침투에는 능하지만 포스트 플레이나 전방에서 피지컬을 앞세워 버텨주는 역할은 불가능한 공격수이다. 실제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원톱으로 나오며 부진한 활약을 보여줬다.

리로이 자네, 세르쥬 그나브리 등 기동력이 훌륭한 측면 공격 자원은 많지만 전방에서 버텨줄 자원이 없는 독일은 공격 조합을 구성하는데 어려움에 빠져있다. 심지어 펄스 나인의 자리에서 재능을 보였던 하베르츠마저 레버쿠젠에서 첼시로 이적한 뒤 공격형 미드필더나 윙어에 기용되다가 부진한 활약을 펼치며 뢰브 감독의 머릿속을 더 어지럽히고 있다.

 


2. 명장들의 선물

 

뢰브는 운이 좋은 사나이다. 물론 그의 업적을 폄하하려고 이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뢰브가 이끄는 디 만샤프트의 각 소속팀 선수들 중에는 명장들의 지도를 받는 선수들이 많으며 그들이 선수들을 크게 발전시킨 것은 사실이다.

뢰브의 수석 코치로 2014 브라질 월드컵의 우승을 이끈 한지 플리크는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다수의 디 만샤프트 소속의 선수들을 데리고 있다. 플리크는 여러 돌발 상황으로 여러 수를 두며 성장했는데 2019-20 시즌에 레반도프스키가 부상으로 쓰러졌을 때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하고 안쪽으로 파고드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그나브리를 펄스 나인으로 활용했으며 큰 덩치와는 반대로 상당히 발이 빠르며 공격 전개에 능한 쥘레를 라이트 백으로 기용하는 변칙 전술을 썼으며 쥘레나 파바르가 민첩성에서 약점을 보이는 것을 알고 빠른 기동력을 지닌 리로이 자네를 수비에 적극 가담하는 윙어인 토르난테로 스타일을 바꾸며 이는 최근에 라치오와 쾰른,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난 시즌에는 큰 키에 비해 빈약한 피지컬로 자신의 큰 키를 활용하지 못했던 고레츠카를 코로나 락다운 기간에 벌크업을 시켜 완전히 다른 선수로 탈바꿈시켰으며 이에 피지컬 활용이 늘어난 고레츠카는 키커 랑리스테 수비형 미드필더 항목에서 WK-2를 받았을 정도로 성장했으며 자신의 약점인 신체 능력이 오히려 장점으로 거듭나면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나겔스만은 측면과 중앙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클로스터만과 할슈텐베르거를 활용한 유연한 스리 백을 보여줬으며 로제, 가스페리니, 글라스너 등 이름 있는 감독들이 디 만샤프트의 동향이 될 자원들을 잘 양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선물은 뢰브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맨체스터 시티의 펩 과르디올라는 신체 능력과 득점력이 좋지 않았던 전방의 공격수 가브리엘 제주스를 수비라인 유인에 활용한 뒤 중앙 미드필더로 시작해 박스까지 침투하며 슈팅을 날리며 득점하는 역할을 맡으며 맨체스터 시티의 상승세에 기여하고 있다. 귄도안은 2020-21 시즌에 21경기에 출전해 무려 11골이나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무리뉴의 토트넘을 상대로는 멀티 골을 넣으며 팀의 대승에 기여하는 등 팀의 해결사로 거듭나고 있다.

펩 과르디올라는 귄도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스트라이커처럼 뛸 수 있으며 놀라운 센스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가짜 공격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그는 비록 오늘 페널티 킥을 실축했지만 그다음 두 골을 넣었습니다. 그는 그런 점에서 매우 훌륭합니다."

 

한 단계 더 성장하며 월드클래스의 재목을 보여준 두 미드필더 귄도안과 고레츠카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강력한 피지컬을 영리하게 활용하면서도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고레츠카와 득점력을 얻으며 득점 감각에 눈을 뜬 귄도안은 뢰브에게도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자 그러면 어떤 대형으로 나서야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건방지게도 일개 축구팬에 불과한 본인이 의견을 한번 내 보겠다.

 


3. 미들라이커를 활용한 3-5-2 시스템

 

 

위 사진의 대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명목상의 투 톱은 2019년 3월 24일, 요한 크루이프 아레나에서 열린 유로 예선에서 네덜란드를 상대로 3-2로 이겼을 때의 공격 조합과 같다. 그들은 유기적인 스위칭과 빠른 발을 활용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그때와는 중원 대형이 다소 다르다. 그땐 키미히와 크로스의 투 볼란치와 고레츠카가 전진하는 대형이지만 이번에는 키미히 원 볼란치에 고레츠카와 귄도안이 전진해있으며 양 윙백인 고젠스와 바쿠는 키미히와 같은 라인에 있다. 고젠스는 그나브리가 중앙으로 침투할 때 왼쪽 측면에서 공격을 지원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백 스리는 대표팀에 복귀할 확률이 높아진 훔멜스와 오른쪽 측면 수비수를 겸할 수 있는 쥘레와 왼쪽 측면 수비수를 겸할 수 있는 할슈텐베르거로 수비 라인을 잡았다. 골키퍼는 당연히 노이어다.

본인이 이 대형을 추천하는 이유는 다음의 이유에서다.

하나, 귄도안의 훌륭한 박스 침투 능력이다. 스위칭에 능한 그나브리와 빠른 발로 수비의 균열을 내는 데 능한 자네의 존재는 귄도안이 페널티 박스로 침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둘, 레온 고레츠카의 왕성한 활동량과 강력한 피지컬 능력이다. 고레츠카는 공격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강력한 피지컬과 영리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상대 수비수들을 견제하는 역할이 가능하다.

셋, 고레츠카와 귄도안의 전진으로 발생하는 공백으로 인한 키미히의 과부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 오른쪽 윙백인 보테 바쿠는 중앙 미드필더로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왕성한 활동량을 앞세워 키미히를 지원하는 역할과 상대의 인사이드 하프를 노리는 전략 모두가 가능하다. 게다가 자네와 쥘레는 측면 수비를 담당할 수 있는 자원들이다. 그들에게 측면을 맡기고 키미히를 돕는 위치로 갈 수 있다. 추가로 키미히는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주는 선수다.

넷, 측면 지향적인 고젠스가 있는 왼쪽은 스리 백을 담당하는 훔멜스의 전진으로 해결될 수 있다. 훔멜스가 전진해도 최소한 할슈텐베르거와 쥘레가 버티고 있으며 훔멜스가 전진하는 상황이면 바쿠와 자네까지도 수비에 가담하게 할 수 있다. 할슈텐베르거는 레프트 백을 볼 수 있는 선수다. 추가로 골키퍼인 노이어는 스위퍼라고 불릴 만큼 커버 범위가 넓은 선수다.

다섯, 고젠스가 왼쪽 측면 공격에 적극적이기에 그나브리는 상대적으로 중앙에서 고레츠카와 함께 상대 수비를 유인하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는 고젠스, 귄도안, 그나브리, 고레츠카, 자네의 오각 편대가 공격에 가담한다.

여섯, 이런 다양한 방식의 스위칭은 잘 통제가 되지 않으면 크게 꼬일 수 있지만 바이에른의 중원을 완벽하게 조립한 키미히와 훌륭한 수비라인의 리더 훔멜스, 그리고 그 뒤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지휘하는 주장 노이어의 존재가 있다.

일곱, 왕성한 활동량을 보인 귄도안과 고레츠카가 체력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일정 부분 대체할 수 있는 선수들이 여럿 존재한다. 특히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이며 박스 침투에 특히 능했던 노이하우스는 그들의 체력을 안배해줄 좋은 선수이다. 이기고 있는 상황에선 수비적인 자원인 나폴리 소속의 데메를 활용할 수도 있으며 골이 필요한 상황에선 마르코 로이스나 경우에 따라서는 카이 하베르츠까지도 활용할 수 있다. 추가로 수비진에도 다재다능한 케흐러나 클로스터만, 그리고 경험이 많은 보아텡을 백업으로 둘 수도 있으며 이전까지는 최악의 부진을 보였지만 이번 시즌 후반기에 부활의 조짐이 보이는 도르트문트의 니코 슐츠도 활용할 수도 있다.

종합하자면 이 전술은 빠른 템포를 가져가면서 유기적으로 스위칭을 하며 상대 수비진과 공격진을 교란하는 게 중요한 전술이다.

 


4. 옛 영웅들의 희생

 

하지만 이 전술의 아쉬운 점도 있는데 노이어를 제외한 2014 월드컵의 우승 주축들의 다수가 이 전술에서는 희생될 수 있다.

뢰브에 의해 은퇴했으나 최근 복귀설이 도는 토마스 뮐러와 백곰 군단의 중원을 지휘하는 토니 크로스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두 선수는 아직도 절정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디 만샤프트의 우승을 주도했던 영웅이었던 토니 크로스와 토마스 뮐러 (출처: 골 닷컴)

 

크로스는 매 경기 90%를 넘는 패스 성공률을 보이며 마드리드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하고 있으며 토마스 뮐러는 2019-20 시즌 바이에른의 트레블 달성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선수 중 한 명이고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수비 가담 능력이나 스피드에서 그들은 고레츠카와 귄도안보다 적합한 자원은 아니다. 뮐러가 박스 침투는 능하지만 수비에 기여하는 부분은 귄도안이나 고레츠카보다 떨어지며 크로스가 그들보다 더 높은 패스 성공률을 기록하지만 역시 공격수의 역할을 하기엔 어렵다. 그렇다고 키미히와 경쟁하기에는 현재 키미히의 활동량에는 미치지 못한다.

결국 이 체제에서는 잘해야 백업 선수 역할일 것이다. 후반에 골이 필요할 때 뮐러가 귄도안을 대신 나올 수는 있으며 키미히의 체력적인 문제를 도와줄 교체 선수로 크로스를 쓸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이상 주전급으로 활약하기엔 전술적인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부적합할 것으로 예상된다.

 


5.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

 


뮐러와 크로스는 독일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끈 위대한 선수들이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려보자. 헬무트 쇤은 유로 72 때는 맹활약한 귄터 네처를 1974 서독 월드컵에서는 팀의 전술 컨셉과 맞지 않자 과감히 교체했고 서독은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미헬스와 크루이프가 이끄는 토털 풋볼의 네덜란드를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1998 프랑스 월드컵의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베르티 포그츠는 과거 서독 말기와 통일 독일 초기의 전성기를 이끈 마테우스와 토마스 헤슬러, 그리고 위르겐 클린스만과 위르겐 콜러 같은 노장들을 내치지 못하고 계속 기용했다가 기동력 부족과 낡은 전술적인 부분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8강에서 크로아티아에게 3-0으로 대패하며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당장 뢰브도 시대에서 뒤처진 외질과 케디라, 당시에 기량이 좋지 않았던 토마스 뮐러와 제롬 보아텡을 기용하면서 멕시코와 한국에게 패하며 80년 만에 조별 예선 탈락을 하지 않았던가?

가장 최근에는 스페인에게 6-0으로 대패하며 뢰브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

본인이 제안한 전술이 일개 축구팬의 소견일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을 타개하려면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필요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브라질 월드컵 우승 당시 플리크와 뢰브 (출처: 분데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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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수용

 

원 출처: dongneazesoccer.tistory.com/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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