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을 불문하고 과거에 훌륭했던 선수를 현재 최고의 선수들과 비교하며 평가하거나 과거의 선수가 현재 활약하면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가정하는 것은 팬들에게 큰 재미를 준다. 다만 스포츠 자체가 순수하게 종목 내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종목 외적인 부분도 많이 가미될 수밖에 없으며 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이 때문에 축구사에서도 특유의 종목 외적인 부분에서 혜택을 본 자도 있으며, 반대로 불이익을 본 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종목 외적인 부분은 과거와 현재의 기술 차이, 장비 차이 등으로도 해석할 수 있으나 이 글에서는 국적과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더욱 빛을 보지 못한, 혹은 21세기에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면 더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을 것 같았던 선수들을 알아보려고 한다.

첫 번째로 언급할 인물은 월드컵에 나가보지 못한 선수들 중 가히 역대 최고봉으로 뽑히는 선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다. 축구에 관심이 많은 팬들은 알고 있듯이, 디 스테파노는 정말 옛날이니까 가능할 법한 갖가지 이유들로 인해 월드컵에 못 나간 비운의 선수로 기억된다.

 

디 스테파노는 1946년 월드컵부터 1966년 월드컵까지 총 5번의 월드컵 도전을 했는데, 엽기적일 정도의 스토리를 겪으며 실패를 반복했다. 우선 1946년에는 세계대전으로 인해 월드컵이 열리지 않았으며, 1950년 월드컵에는 디 스테파노의 국가였던 아르헨티나가 불참했다. 또한 1954년 월드컵에는 갑자기 규정 영향을 받으며 이중 국적을 가지고 있던 디 스테파노의 월드컵 출전이 무산되었다. 이후 1958년 월드컵에는 역대 최강 소리를 듣던 스페인 국적으로 월드컵에 참여하려 했으나, 스페인이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는 대이변이 발생하고 말았다. 물론 이때의 스페인 전력은 4년 뒤인 1962년에도 유지되었으나, 이때는 디 스테파노가 개막전 직전 경기에서 부상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6년 월드컵도 허리 부상 때문에 출전 자체를 하지 못했고, ‘월드컵 불운’ 그 자체의 커리어를 보내며 은퇴를 하게 되었다.

 

현대에 와서 재평가가 이뤄질 때, 만약 수많은 행정적, 정치적 틀의 안정화가 이뤄진 21세기에서 뛰었다면 디 스테파노는 얼마나 위상이 달라졌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심지어 디 스테파노는 다양한 능력과 훌륭한 축구 지능에서 나오는 멀티 포지션 소화 능력마저 역대 최고로 뽑히는 선수 중 한 명이기에, 아마 현대축구가 요구하는 모든 부분에서 완성형에 다다른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빅이어는 참 쉽게 타냈지만 각종 불운으로 월드컵에는 나서지 못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두 번째로 언급할 인물은 국적의 비운을 타고난 선수, 드라간 자이치다. 현대축구를 즐기는 팬들에게 “국적의 비운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이나 라이언 긱스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겠지만,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드라간 자이치를 1순위로 뽑고 싶다.

 

드라간 자이치는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 무대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세계에 알렸으며, 자타공인 1970년대 초 최고의 윙어로 뽑히는 선수였지만, 유고슬라비아라는 국적이 그의 발목을 적지 않게 잡았다. 실제로 정치적 상황과 연관되어, 공산주의에 속하던 유고슬라비아는 선수들의 해외 이적을 차단했고, 드라간 자이치는 27세가 되어서야 프랑스 리그로 진출할 수 있었다.

 

현재 21세기의 유고슬라비아의 후신 국가들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이 있는데, 각 나라들의 선수들이 유럽에서 이름값을 떨치는 것을 생각해보면 드라간 자이치의 케이스는 더욱 안타깝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유고의 주장 드라간 자이치


마지막으로 언급할 인물은 커피하우스 축구의 낭만, 마티아스 진델라다. 우선 진델라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도대체 “커피하우스 축구가 뭐야?”라고 물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미리 설명하고 가도록 하겠다. 우선 20세기 초반 오스트리아에게 있어서 커피하우스란 존재는 영국에게 있어서 펍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단순히 무언가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토론하고, 대화하고, 논쟁하는 장소이자 지식적인 진취를 목표로 수다를 떨던 그런 분위기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조나단 윌슨(Jonathan Wilson)은 오스트리아의 커피하우스 축구에 대해 영국과 다른 스타일로 축구를 해석할 수 있었던 까닭에 가깝게 언급하기도 했다. 즉 오스트리아가 전성기를 누렸던 20세기 초반은 커피하우스 축구의 낭만이 현실화된 것이자, 당연히 다뉴브 학파와도 연결되는 부분인 것이다. 마티아스 진델라는 이러한 오스트리아 축구사에서도 최고봉으로 꼽히는 선수이다. 위고 마이슬 감독의 분더팀-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일컫는 말-에서 활약한 진델라는 다재다능한 공격수의 끝판왕이라는 칭호에 걸맞은 역할을 수행해냈고, 왜 자신이 당시 분더팀의 핵심 선수였는지 입증했다.

 

하지만 특유의 지능적인 중앙유럽축구 스타일을 이끌었던 진델라는 1938년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으로 인해 큰 영향을 받게 되었고, 1939년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며 나치 정권에 희생된 것이라는 음모론의 희생자로 지목당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나단 윌슨(Jonathan Wilson)은 진델라의 죽음에 대해 그저 음모론일 뿐이라고 일축했으나, 정확한 사실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과 진델라의 죽음은 커피하우스 정신의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자, 동시에 다뉴브 학파가 세계로 뻗어나가며 많은 것을 입증하게 되자 그들의 철학은 혁신적이었고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재평가하게 되는 사건이 되었다.

 

진델라는 분더 팀을 이끌었으나 자신의 조국 오스트리아는 안슐루스라는 치욕적인 일을 겪는다.


사실 이 글에서 언급된 세 명의 인물 말고도 축구사에서 시대적 배경에 희생당한 선수들은 여럿 있다. 스웨덴의 규정 상 국가대표에 출전하지 못했던 군나르 노르달이나, 야신 이후의 러시아 골키퍼 계보를 이었던 리나트 다사예프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물론 이들에 대한 재평가가 속속히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나, 정말 까다롭게 시대적 배경의 불이익을 받은 선수들은 제도적 요소나 환경적 요소를 하나하나 조명하지 않는 이상 재평가의 난이도가 상당한 축에 속하기에,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이처럼 스포츠에 있어서 평가란 개념은 떼어놓을 수가 없는 요소에 속한다. 이는 옛날로 갈수록 자료의 빈약이나 국가와 행정, 정치적, 시대적 배경들이 공존하며 불이익을 양산해냈던 상황들이 적지 않았던 터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여러 가지 해석과 철학들이 맞부딪힌다. “옛날 선수들이 받았던 불리한 상대성을 보정해줘야 한다”나 “현대 축구 선수들의 상향 평준화된 전술 수행 능력을 더 인정해줘야 한다”등. 당장 무엇이 정답이라 말할 수 없겠지만 축구 철학이라는 것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칸트가 내놓은 3대 비판(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처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통일된 답이 일시적으로라도 제시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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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세현

“축구 과학자(the soccer scientist)”.

 

이 칭호는 UEFA가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지대했던 명감독 중 한 명으로 발레리 로바노브스키(Valery Lobanovskyi)를 뽑으면서 남긴 평가다. 물론 로바노브스키가 수학적, 과학적 이론에 근거한 축구 철학을 펼칠 때까지만 해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21세기의 축구를 보고 있는 우리는 현재 전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란 것을 체험하고 있다.

 

로바노프스키와 그 휘하의 과학자 참모진들


태초에 야망과, 경쟁심, 드라마틱함, 재능의 충돌 등을 바탕으로 한 낭만주의에서 시작하여, 스포츠는 그토록 융합될 것 같지 않던 과학, 수학과의 융합을 이제는 부정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실제로 과학적 기술은 발전하는 축구 장비와 의료 기술, 체계적인 선수 관리법 등을 기점으로 효과를 증명하더니, 21세기 모바일 혁명 이후로는 경기력 평가의 시각화, 스탯과 기록 정리, 훈련 시스템 정립, 유소년 육성 시스템 정립 등에서도 엄청난 가속도를 내며 전진하고 있다.

특히 스포츠에서 경기력이나 팀의 상태를 나타낼 때 자주 쓰이는 스탯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보완되고 있다. 예를 들어 xG(기대 득점 수치) 값이 혁신적이었다 할 지라도, 골키퍼의 기량 등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시점이 제기되는 등, xG값을 보완하기 위한 xGOT(유효슈팅 한정 기대 득점 수치) 값이 등장한다던가, xG90(90분당 기대 득점 수치)나 NPxG(페널티 킥 제외 기대 득점 수치)가 등장한다던가 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중계 도중에도 이러한 수치들이 실시간으로 나타나는 상황까지 선보여지고 있다.

 

기대 득점 계산법 중 하나


하지만 당연하게도 과학적, 수학적 보완점들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실점이 많은 팀은 경기력이 안 좋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팀 스타일상 뒷공간을 상대 공격수에게 내주는 리스크를 지면서도 수비라인을 올리고 압박을 거세게 하는 공격적인 전술 때문이라고도 충분히 해석할 수 있으며, 실점 상황 등에서는 갑자기 관중석에서 무언가 날아와 골키퍼가 한눈이 팔리는 등의 인간적인 변수가 생기는 것, 혹은 슈팅의 난이도 등이 골키퍼가 처한 상황. 즉 골키퍼의 시야 상태나 박스 안 인원수 같은 다양한 변수들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는 것 등이 있다.

물론 아직 21세기의 반의 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 정확히 말해서 모바일 혁명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축구를 포함한 여러 스포츠 종목들은 과학과 수학을 이용하는 트렌드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고, 스포츠를 과학과 수학으로 설명하고 해석하려는 기류가 늘어나고 있으나 역시 아직은 완벽하지는 않다. 아니 어쩌면 완벽함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완벽에 더 가까워지기를 원하고 이는 축구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욕망의 결괏값이 지금의 축구 시장은 과학과 수학적 이론 흡수 등의 상황을 통해 다양한 방법과 응용법으로 진취적인 상황과 변혁을 겪고 있는 것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상태다. 즉 현재는 축구 과학 혁명의 시대, 우리는 그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과학 축구의 시조 로바노프스키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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